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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여명]
인터넷을 통해 세계의 여러 사람들과 정보를 주고 받을 수 있는 21세기, 고등학생들조차 핸드폰을 가지고 걸어다니며, 순식간에 지구 반대편으로 메일을 보내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불과 2천년 전의 우리의 조상들은, IT기술은 커녕 종이나 연필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 글자마저 없었던 당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은 어땠을까. 그리고, 기록이 불가능했던 그 사람들의 생활을 대체 우리는 어떻게 알 게 되었을까? 거대한 대륙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우리들이, 세계의 경제를 움직이고, 전 세계에서 각광받는 공업제품과 소설, 그리고 애니메이션을 제작할 수 있게 된 문화를 이룩한 그 출발점을 들여다 보자.

제 1 장(구석기~고분시대)

●구석기시대
수 만년 전의 일본열도는 유라시아 대륙과 맞닿아 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지금의 동해가 큼지막한 호수일 때지. 이 무렵, 인류는 때려서 만든 '뗀석기'라 불리는 도구를 사용하여 동굴 같은 곳에 거주하며 사냥과 채집 등으로 생활했던 것으로 여겨지고 있어. 뗀석기를 구석기라고도 부르는데, 이 시대를 구석기시대라 하지.

뗀석기는 말 그대로, 촌스런 석기야. 석기라고 하면 흔히 머릿 속에 그려지는 것들은, 대개 신석기라고 생각하면 틀림없지. 뗀석기는 그저 돌을 돌끼리 부딪히거나 단단한 곳에 부딪혀 깨뜨린 것을 잡기 쉽게 만든 것이라 딱 보는 것만으로는 다른 돌들과 별 차이가 없어보여. 아마 우리가 어쩌다 발견하는 일이 있다한들 지나쳐버리기 십상이지 않을까? 그정도로 겉모습은 평범한 돌이지.
사실 뗀석기를 사용했을 시기는 일본열도에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았던 것으로 간주되지. 나가노현의 '노지리호(湖)'라는 곳에서 나우만코끼리와 큰뿔사슴의 화석이 발견된 것으로 봐선, 그런 동물들이 살았던 건 사실이지만 말야. 중요한 석기가 발견되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종전 후 1949년, 일본에서 처음으로 구석기가 발견되어, 일본에도 구석기시대가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게 알려졌지. 이걸 발견한 게 아이자와 타다히로라는 사람이야.

1926년, 쇼와 1년에 도쿄에서 태어난 타다히로는 어릴 적부터 고고학에 흥미를 가져 독학으로, 즉 학교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만의 힘으로 고고학을 공부했지. 부모님의 이혼 이후 이웃집살이를 하는 등(전쟁 이전에 가난한 집 자식들은 학교에 가지도 못하고 남의 집에서 일하며 살았다.), 군대에 강제징용되는 등 생활고가 겹쳤지만 타다히로의 고고학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어. 그리고 종전 후에는, 낫토를 길에서 팔며, 짬짬히 군마현의 이와쥬쿠라는 곳의 지하도에서의 발굴을 계속하였지. 그리고 마침내 구석기의 파편들을 발견한 거야. 하지만 구석기로 인정받지 못했어. 그는 일을 하며 발굴을 계속하던 끝에, 결국 거의 완전체에 가까운 뗀석기를 발견하게 되었지.
 그리고 뗀석기를 발견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어떤 대학의 교수와 팀이 파견되어 면밀히 조사한 결과, 구석기시대의 것이 맞는 것으로 판단되었어. 그런데, 발견자가 그 교수로 인정되는 바람에 아이자와 청년의 공적은 완전히 무시되고 말았지. 엎친데 덮친 격으로 아이자와 청년은 거짓말쟁이로 낙인찍혀 험한 꼴을 당했어. 지금과 같은 21세기에는 이런 일이 일어날리 없다고 믿고 싶겠지만, 적어도 그 당시의 아이자와 청년은 대학교수는 커녕 대학에서 고고학을 공부하지도 않았다는 이유로 그의 발견이 묵살되어버린 거야. 한심한 이야기 아니니? 하지만 그 이후에도 지지않고 
수많은 구석기시대의 유적을 발견한 결과, 간신히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지. 잘 된 얘기지?
 어쨌든 그 덕분에 일본에도 구석기시대가 존재했음이 증명되었지. 우리들은 아마 그의 열정에 감사하지 않으면 안될지도 몰라.

 

●죠몬(縄文)시대
 지금으로부터 약 1만년 전, 지구의 기온이 올라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상승하여 일본열도가 생겨났지. 대륙과 이어져 있던 일본열도가 바다를 접한 섬나라가 된 거야. 이 무렵 사람들은 흙을 빚어 토기를 만들 수 있게 되었어. 그 당시의 토기에는 새끼줄 매듭과 같은 문양이 새겨져 이를 죠몬토기라 부르고 그 시대를 죠몬시대라고 부르고 있지. 죠몬시대에는 석기 기술도 신석기로 진화해있었어. 신석기는 돌을 떼어 만든 '뗀석기(打製石器)'와는 달리 돌을 갈아 만든 '간석기(磨製石器)'야. 박물관 등에서 볼 수 있는 화살촉 등이 이에 해당되지. 이 무렵에는 기후가 온난해서 나우만코끼리 등의 대형동물은 모습을 감추었지만, 그래도 사슴과 멧돼지 등의 사냥은 가능했지. 또 나무열매의 채집도 이뤄지고, 물가에서는 물고기와 어패류를 잡았어.
 그런데 이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생활했는지, 우리는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책? 땡! 그 시대의 일본에 아직 문자는 없었어. 그럼 대체 어떻게 된 걸까? 정답은 '쓰레기장'이야. 응? 왠 쓰레기장이냐고? 그 당시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렸던 장소를 찾아내어 어떤 쓰레기가 버려져 있는지 (물론 거의 화석상태긴 하지만), 그것을 관찰하여 당시 사람들의 생활이 어땠는지 추측이 가능했던 거지. 당시 사람들이 쓰레기 버리던 곳을 '조개무지(貝塚)'라고 불러. 일본에서 최초로 발견된 조개무지는 동경의 오오모리(大森) 조개무지라 불리우는 곳이지. 여긴 일본인들이 아닌 미국인들에 의해 발견되었어. 발견한 사람의 이름은 '에드워드 실베스터 모스(Edward Sylvester Morse, 1838~1925, 미국의 동물학자ㆍ동양학자로 일본에 다윈의 진화론을 최초로 전파했다.-역주)'야. 동물학자였던 모스는 메이지시대 때 일본에 들어와 도쿄대학의 교수를 역임하고, 어쩌다 일본에 들어온 바로 다음날 오오모리 조개무지를 발견했어. 그리고 그 조개무지를 비롯한 유적 발굴로 이런저런 정보를 얻게 된 것이지. 토우(土偶)라고 불리는, 흙을 빚어 구운 사람 모양의 인형 등도 발견되었어. 무슨 용도로 만든 것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여성을 본 떠 만든 것으로 보아, 여성이 아이를 낳는 것을 신비한 힘으로 여겨 이를 숭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하고 있지. 머리 부분이 하트를 뒤집어 놓은 모양으로 생긴 '하트형 토우', 안경을 쓴 것 같은 얼굴의 '차광기(遮光器) 토우' 등이 대표적이지.
 이 시대의 주거지와 무덤을 조사해보면 서로 간의 차이가 그다지 없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당시에는 신분과 빈부 차이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고 짐작할 수 있어. 또 물가 주변의 고지대에 수혈주거(竪穴住居)지를 만들어 취락 생활을 했던 것으로 여겨지고 있어. 수혈주거는 말그대로 세로로 넓으면서 얕은 구멍을 판 뒤 정중앙에는 기둥을 세우고, 주변에는 갈대 등의 식물로 울타리를 만든 간단한 주거형태라 할 수 있지. 죠몬시대의 유적으로는 아오모리현(青森県)의 '산나이마루야마(三内丸山) 유적'이 대표적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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